항왜란, 다시말해 임진왜란 당시 왜군에서 조선군으로 투항하거나 귀화한 세력들을 가르켜 말하는 단어다. 아마도 이이제이라는 전략을 계속 사용해온 한반도의 문화때문인지, 꽤나 많은 왜군들이 당시 조선의 정책으로써 귀화했을 것이다.

 

일단 당시 왜군들은 무의미한 정벌에 대해 불만이 꽤 있었던 것으로 보였으며, 때문인지 우리가 흔히 사야가, 즉 김충선으로 알고 있는 사람의 경우 조선에 상륙하자마자 '무의미한 정벌'에 대해 회의를 느끼고 평소 동경한 조선에 오고자 참전했다고 하며 항복의사를 밝힌다.

 

이런 것을 볼때, 당시 왜의 세력들은 조선에 대해 상당한 동경심을 가지고 있던 것으로 보인다. 그렇지만 왜군들이 전쟁초기부터 사야가처럼 극단적인 투항을 하진 않았다. 당연한 것이지만, 자신의 군주를 그토록 쉽게 버리는 것은 상당히 어려운 일인 것이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였기 떄문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전쟁 1년 뒤에 상당히 많은 왜군들이 투항을 해왔다고 전해지는데, 이는 조선의 제절적 특징때문이었을 것이다. 남쪽 지방에 살던 왜인들이 조선인들도 견디기 힘든 무자비한 겨울의 추위를 견뎌야했으니, 정말 큰 고역이 분명했을 것이다.

 

하여튼 이런 연유로 인해 꽤 많은 왜군들이 투항했고 이들은 조선군으로 재편성되어 전투에 참전하였고, 아까 말했던 김충선의 경우에는 아예 조총에 대한 모든 것을 조선에 넘기는 역할까지 하였다.

 

이런 것이 현대의 우리눈에는 상당히 특이해 보이겠지만 사실 당시 조선에서는 이런 것이 일상적인 일종의 전략이었다. 예전에 벨테브레나 하멜일행 등이 일본에 가던 중 표류해 조선에 도착했을 때, 조선이 취한 태도는 그들 전부를 훈련도감에 보내서 군사로 편성하는 것이었다. 하멜의 경우 작은 배를 타고 일본으로 소위 '튀었'지만 벨테브레는 엄청난 호란에 참전하여 살아남았을 뿐만 아니라 전공을 세워(이른바 이이제이) 박연이라는 이름을 하사받아 결혼하여 관직을 얻고 조선최초의 서양 통역관이 되었다.

 

항왜의 경우도 마찬가지였을 것이고, 따라서 그 당시의 조선은 일본인이라고 하여 그들을 받아들여 동일한 조선인으로 생각하는 것이 당연했을 것이다.

 

하지만 무슨 이유에서인지 현대의 대한민국은 이런 효과적인 전술을 완전히 잊어버린 것 같다. 아마도 구한시절 고종이 펼친 나름의 이이제이가 제대로 먹히지 못해서 그런 것이 아닐까한다.

 

고종의 이이제이를 생각해본다면, 당시 대한제국이 너무나 취약했기 때문에 사실상 이이제이를 통한 우위가 불가능한 상태여서 실패한 것이 확실하다. 사실상 모든 것이 외세에 달려있던 상황이니 말이다.

 

지금 대한민국은 어떨까? 그래도 '나름의 혁명'을 통해 어설픈 민주화를 거치고 또 '나름의 경제수준'을 갖춘 국가의 모양새는 갖춘 상태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런데 이 나름의 모양새는 과거와는 상당히 달라서, 국가의 틀을 갖췄던 조선이 이이제이로서 작은 몸집을 보완하고 적국을 치던 것이 이제는 한쪽에 너무 치우쳐서 한 때 같았던 족속이었던 사람들을 도로 치고 있지 않은가?

 

지금 우리가 할 일은 같은 내부를 치는 것이 아니라, 나보다 더 큰 적을 다른 적으로서 치고, 그 안에서 우위를 점하는 태도임이 분명하다. 우리가 조선의 후손이고 또 이제는 자신만의 나라를 되찾은 사람들이 분명하다면, 그리고 이 좁은 땅에서 더 강해지려면 그 옛날 항왜와 이이제이를 성찰해보는 일이 정말 중요한 최우선의 과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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