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자를 파낸 지 3일이 되는 아침, 남자는 0700시에 길을 나섰다.
소설『로드』, 『Civilizaion and Capitaism』제 2권, 수건과 여벌의 옷가지, 안전모를 배낭과 손가방에
나누어 넣고 방배역에서 지하철을 탄다.
...
사람들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아침 해가 마지막으로 보이는 순간인 지하철역 입구에서도 숨소리도 내지
않았다. 鐵廓. 조선사람들이 돈을 들여 죽은 사람을 묻을 때 石廓을 둘렀다.
네모난 깡통에 강철과 고무바퀴를 달아놓자 산 사람들이 그 안으로 꾸역꾸역 밀려들어와
반갑게 내세를 맞이한다. 남자도 그 안에 들어가 발바닥을 매달았다. 덜컹거리는 음악에
맞춰 남자도 그 옆에선 남자보다 큰 여자도 다른 여자도 다른 남자도
뒤집혀 매달린 상태로 흔들흔들, 철제 벽에 부딪친다.
남자는 단테를
생각했다. 아래로 내려가는 지옥. 돈을 내고 입장하는, 발을 매달아 사람을 운반하는
죽은 자들의 관을 그는 왜 몰랐나.
...
문이
열리자 사람들이 뛰어내렸다. 더 깊은 지하로 내려가는 발걸음이 빨랐는데, 그 한
가운데에 늙은 남자가 공포에 질려 - 다른 존재들에게 공포를 선사하는 공포감
- 서 있었다. 늙은 몸에 나이든 양복, 그리고 얼굴처럼 쭈글거리는 중절모로
머리가죽을 쓴 한 남자. 그보다 더 젊은 것들이 그를 밀치고 무시하고
지나가는 이 내세의 통로가 마음에 들지 않았던 모양이다. <악인이여, 지옥행 열차를
타라>
한 층을 더 내려간 지하의 세계에는 자동판매기가 우뚝 서있었고
드문드문 남자들과 여자들이 비척거리며 통로를 돌아다녔다. 남자는 땀에 절은 검은 지갑
속에서 현세의 화폐를 꺼냈다. 지옥 속에서도 현세의 화폐는 통용했는데도 남자는 몸을
늘어지게 만드는 악마의 음료를 고르지 않았다.
이곳의 박자는 '덜컹'이었다.
덜컹덜컹 - 이번 역은 방배역입니다. 니 집이니까 내리란 말이죠. 발 조심하고,
빠지면 죽습니다. 이건 너를 두 번 죽이는 일이라고 - 하면 덜컹하고
문이 열렸고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자판기가 화폐를 마시자 묵음의 "꾹"소리가 덜컹하고 플라스틱
병을 싸놓으면 남자는 투명한 천 밑을 들추고 이리저리 속을 더듬어서 차가운
녹차를 뽑아 손가방에 챙겼다. 교대역에서 구파발까지 가는 철제 관 속에는 다행이
앉아서 갈 자리가 몇 개 있었다. 저절로 붙어버리는 볼기짝에 차가운 관의
일부가 닿았다. 시원했다. 한 여름에 파놓은 무덤 속에 앉은 것처럼 정말
시원했다.
남자는 지옥행 열차에 앉아 서양오랑캐의 소설을 선택했다. 그래봐야 어짜피
남은 선택지도 서양오랑캐 것이었다. 끔찍한 오리엔탈리즘을 종이에 담아 한 장씩 빼먹는
이 오묘한 맛이라니. 야구장에서 마시는 맥주보다 더 즐거웠다.
구파발에 이르자
여행은 끝이 났다. 『로드』위를 걷던 남자는 두 다리를 펴고 지상을 향한다.
광합성을 하러 나가는 녹차병은 피곤하지 않았다. 남자가 휴대전화를 벌컥 열자 문자메세지가
하나 와 있었다. 여자의 문자였다.
안녕ㅋ도착했니?ㅎ
ㅋㅎ
네, 도착했어요
오늘은언니들이랑같이안있어?그럼먼저가있어ㅋ이제연신내라기다리라고하기좀그렇네ㅜ
ㅋ
기다릴게요. 오세요.
조금 기다리자
여자가 나타났고 지상을 향한 마지막 4개의 보루 중에 2번을 골라서 같이
나갔다. 되다만 밥처럼 묽은 하늘이 여름을 봄처럼 감싸고 있었다. 지상도 자기를
포장하는 시대 속 남자와 여자는 누런 황토길을 걸었다. 쇠달구지 자국에 쇠발자국이
있을 법한 색깔 위로 캐터필러가 지나간 자국이나 오톤 트럭의 족적만 남았다.
누가 전쟁이 났다고 해도 그대로 믿을 법한 시멘트 덩어리들과 먼지 속에서
남자와 여자는 부장을 만났다.
왜 안전모를 안썼나?
.......
여자는 안전모를 어제 사무실에 두고 왔으니 당연한 물음이었다.
이리와라
네
여분이 있어야하는데... 없구나. 다음 번에는 경비실에서 하나 가지고 들어와!
여자와
남자는 다시 길을 떠났다. 길, 계단, 길... 계단을 걸어올라가니 지옥고양이(Hellcat)라고 쓰여있는
작은 차량이 갓 구운 듯한 콘크리트 빵 더미를 내려놓고 있었다. 계단은
더 이상 없었다. 넓게 쌓인 흙더미 위를 걸어서 다시 오르자마자 또
다시 발굴지로 걸어올랐다. 모래주머니가 쌓여있는 흙더미... 지옥이 그리웠다.
아직 해가
제대로 뜨질 못했다. 날짜는 6월 25일인데 그날의 혼란을 느낄만한 어떤 징조도
없었고 바람과 온도가 봄가을 같았다. 바야흐로 춘추의 시대였다. 남자는 날씨가 너무
좋아서 무얼 하려고 했는지 생각도 안하고 이리저리 돌아만 다녔다. 아마도 유구선을
그리고... 그가 특별하게 느낀 게 있었다면 완전한 형태의 청동시저, 약숟가락과 젓가락이
같이 있는 모습을 보았던 것이었다. 약숟가락이라서 그런지 어제의 충격은 없었다. 밥을
먹었을리도, 그걸로 약을 떠먹었을 이유도 없었으니 말이다. 남자는 죽은 사람들이 죽어서
배가 고플리 있겠지만 아프지는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페인트를 칠하는 동안
몇마디가 오갔는데, 여자의 치아에는 교정기가 빼곡히 달려있었다. 작년에는 분명히 없었는데
교정기 언제부터 하셨어요?
아, 이건 올 3월부터
이가 많이 비틀렸었나요?
그렇지,
원래는 위에만 하려고 했었는데 아래도 해야한다고 의사가 그러다러고
아, 윗니랑 아랫니가
잘 맞물리질 않았나요?
응 그래서 한거야
음... 윗 앞니랑 아래 앞니랑
선이 잘 맞나요? - 이 -
아 그거... 중앙선이 맞냐고? 그런
게 좋은 거야
대부분 잘 맞지 않아요? 물론 저희 어머니는 그렇지
못하지만...
난 이가 고르게 난 사람이 더 신기하던데?
그렇구나...
여자는
아무래도 내가 존대를 하는 것이 어색한 것 같았다. 남자가 88년에 태어나
재수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남자는 어찌되었건 배우는 일에 대해 선,후배는 그 자체로
이미 의미를 가지고 그 안에서 행동해야한다고 생각했다.
태양은 아편에 빠져
나오질 못했다. 희뿌연 구름 속 어딘가에 있는지도 보이지 않았다.
남자는
방위를 측정하다가 청동숫가락이 있는 토곽을 하나 더 발견했다. 옆에 있던 02학번의
여자에게 저 숟가락은 왜 유구 바깥 쪽에 있냐고 남자가 물어보았다.
저런 걸 편방이라고 해. 유물을 따로 담는 거지
그렇군요. 죽은 사람도
방이 따로 있을 때가 있었구나
남자가 아는 남자들 중에는 과대표도 있었고 09학번 후배도 있었다. 그리고 그들은 중 일부는 방에서 살았다. 남자는 집에 자기의 방이 있지만 방이 딸랑 하나 있는 건 아니었다. 적어도 거실도 있고 안방도 있고 화장실도 멍멍이가 쓰는 방도 있었고 좁지도 않았다. 남자의 방에는 서재와 피아노와 프린터, 노트북 2대와 이리저리 굴러다니는 잉크병들 사이에 만년필들이 몇 개 있었는데, 방 전체의 40%을 차지한 건 퀸 사이즈 침대였다. 이건 방이 아니다 - 라고 남자는 생각했다
방을 가진 사람들은 단
한 개의 방, 몸을 겨우 뉘일 수 있는 침대 하나에 작은
옷장, 그리고 뒤로 한 번 빼내면 움직일 곳이 없는 의자에 딱
맞는 책상과 책이 15권 들어가는 책장이 방의 정의였다.
대학교 1학년,
2학년, 3학년, 4학년, 대학원생, 회사원, 프리터는 방에서 살았다. 토곽이 아닌 콘크리트곽이지만,
창문이 없는 점에서는 모두 똑같았다. 남자는 죽은 사람의 방을 다시 보았다.
몸이 누운 자리 옆에 있는, 추가로 쓸 수 있는 방 하나는
남자의 살아있는 친구들에게는 허락되지 않은 공간이었다.
점심시간이 오고, 또 밥을
먹었는데, 남자가 컨테이너 건물에서 나오자 햇볕이 내리쬐고 있었다. 얼굴에 꽃이 피어나는
느낌이었다. 남자의 얼굴에, 머리카락 끝에 비가 방금 그친 정원처럼 물방울들이 똑똑
떨어졌다. 땀은 짜기라도 하지만 아무 맛조차도 없었다. 물이 그대로 들어가 그대로
빠져나오는 기적이 지상에서 일어났다.
남자는 계속 물을 흘리며 뚝뚝, 떨어지면서
사무실로 나아갔다가 이번에는 일제 디지털-캠코더를 들고 다시 언덕을 기었다. 빛을 발하는
황금색 언덕이 노트르담 대성당 전면만큼이나 높아보였다.
회곽 속에는 관이 있었다.
나무 관이 쪼개져 있었는데, 그런 게 3개남짓되었다. 두개는 정상이었는데 하나가 마침
다 무너져있었다. 여자는 키가 매우 작아서 그냥 서있기만 해도 무너진 틈으로
무언가를 볼 수 있었다. 여자가 뒷걸음질쳤다.
동규야, 저게 뭐니?
두개골인데요?
저건 윗니고... 턱을 벌리고 있네요
죽은 이의 윗니가 반짝거리며 까맣게
그을린 두개골을 더욱 시꺼멓게 만들어주었다. 고르지 못했다. 삐죽거리며 튀어나와 보기가 싫었는데,
남자는 그게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살아있는 여자사람들도 이가 상어공주인 사람도 많았던
걸 이제야 기억해냈던 것이다. 남자가 자세히 들여다 볼 수 있었던 여자들
중에 치아가 고른 사람은 딱 한 명이 있었지... 남자가 이리저리 돌다가
관뚜겅을 열어젖힌 곳으로 가버렸다.
관을 열고 투명한 비닐 위에
잔해를 올리자... 안에 사람이 들어있었다. 남자의 손바닥 두개를 함친 정도로 얇은
두께의 긴 덩어리가 박혀있었다. 작업을 지휘하는 남자는 흙손으로 염을 갈랐다. 사람을
덮어서 싸멘 천조각이 메스에 잘리는 피부처럼 가볍게 갈려나갔다. 남자는 캠코더로 그것을
찍었다.
안되겠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파란
방수포를 덮어퍼리고는 남자와 여자에게 내려가자고 했다. 남자는 계속 물을 흘렸다. 마시는
즉시 그대로 빠져나오는 통에 몸안에 남은 염분이 없어 남자는 휘청거렸다.
간식을 먹자고는 하였지만... 남자는 먹을 것이 없어서 물만 마셨다. 염분이
없는 물의 부담스러운 담백함이 괴롭지만 달리 방법이 없었다. 『로드』의 맨 뒷부분을
전부 다 읽어내려갔다. 이젠 오리엔탈리즘이고 뭐고, 소금이 필요했다. 소설 속 남자는
결국 죽었다.
다시 지상낙원 속 황금정원을 오르는 즐거운 시간이 오자
남자와 여자는 정말 죽을 지경이었다. 남자는 그대로 누워서 모래 속으로 들어가서
잠을 자고 싶었다지만, 결국에는 끝을 보았다. 보자마자 페인트칠을 하기 시작했다.
아직 깨지 않았던 다른 회곽을 깼는데, 이번에도 여전히 옆으로 주저앉은 관이
나왔지만 뚜껑은 방금 덮은 것처럼 맨질맨질했다. 남자가 뒤로 돌아서자 무덤 속에서
찍..찌익...하면서 종이를 찢는 소리가 들렸다. 소름이 끼치면서 뒤돌았더니 관 뚜껑의 나무결이...
햇볕에 난도질당하고 있었다. 수백년만에 본 햇빛이 자신이 만든 나무를 찢어발게고 있었다.
남자는 하얀 긴 팔 작업복의 소매를 올려보았다. 하얀 옷을
입었는데도 팔은 까맣게 타 있었다. 다시 관 뚜껑을 보았다. 관 전체의...
껍질이 계속 찢어지는 걸 멈추지 못했다. 피부를 벗겨내는 발랄한 빛의 왈츠가
찍찍..찌이익... 멈추질 않았다. 남자는 팔뚝의 소매를 내리고 다시 실을 묶고 페인트를
칠하고 사다리를 옮겼다. 방수포를 덮자 더 이상 관의 피부는 일어나지 않았다.
남자에게는 그러나 방수포가 없었다. 얇은 천 조각뿐...
일이 끝나자 안전모를
쓴 네 명의 사람, 남자 여자 여자 여자가 집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집에 전화를 걸었다. 이젠 세 명의 여자 중에 어떤 여자도 남자가
부모님께 전화해 존댓말을 쓰는 것에 토달지 않았다. 기괴함이 일상이 되는 순간
건물 지하실로 들어가 길을 잃었다. 그러나 무사히 빠져나와 다시 지하로 들어가서
헤어졌다. 여자의 남자친구가 기다리고 있었다. 지하에서. 그러나 그는 지하에서 만난 남자치고
이상하게 하프도 피리도 불지 않고 있었다. 지하에 마중나온 남자가 말이다.
남자가 여자의 남자친구에게 웃으면서 안전모를 씌워주었다. 남자의 안전모를 벗고 일어난 남자는
우습게도 키가 갑자기 커져있었다. 165센티인 남자가 170센티로 커져있었다. 그러나 남자는 웃지도
아는 척도 하지 않았는데, 멀리서 지하의 박동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모두 1시간에
900원 하는 서울 횡단 시설에 올랐다. 여자의 남자친구가 여자를 비비적거리면서 좋아했다.
남자는 아는 척 하지 않았다. 이윽고 남자의 동기생이 바로 앉자 몇
마디 이야기를 해주었다. 피부를 벗겨먹는 태양의 섭생이 부러웠다고 말해주었다.
여자와
여자의 남자친구가 중도 탈락했다. 남자는 다시 혼자가 되었다. 가방을 열어 안전모를
넣고 다시 『로드』를 꺼내 보았다. 소년은 혼자남았다.
태양 걸어올라가는 방배역에서
우면산까지의 길이 가벼웠다. 혼자남은 소년이 남자의 곁을 떠나지 못해 죽어가는 동안
살아있는 남자는 피부가 벗겨지면서 집으로, 자신의 방으로 돌아갔다. 죽은 피부의 껍질이
손끝에서 바스락거리며 방바닥으로 떨어졌다. 가뭄이 올려면 멀었지만... 남자의 방바닥에는 물이 한
방울도 없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