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오전 8:50부터 작업시작. 중앙계측과 유구 사방 길이를 쟀다. 중간에 사무실
청소를 위해 내려왔다가 10시가 되어 30분 휴식 후 다시 올라갔는데, 11시가
되자 더 이상 작업할 것이 없어서 도중에 내려왔다. 회곽, 마치 시멘트로
시신을 꽁꽁 싸멘 무덤을 깨느라 발굴인부들이 빠르게 움직이는 모습이 보였다.
12시부터... 죽은 자들의 청동수저를 씻기 시작했다. 사실 이 발굴지역은 XX건설회사가 짓는
아파트 촌의 놀이터부지이다. 우리는 살아있는 자들이 담배를 피우고, 그들의 아이들이 놀
공간을 마련하기 위해 죽은 자들을 파헤치고 물건을 꺼냈다. 무덤 속의 사람들이
무얼 먹었는지 숟가락도 젓가락도 모두 부식된 청동 찌꺼기들이 들러붙어있었다. 넓게 펴진
밥뜨는 부분이 얼마나 입에 들어갔다 나왔을까, 모조리 종이처럼 얇아 혼자 바스라졌다.
하나같이 여인들의 숟가락이었다. 당연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남자들이 쓸만한, 밋밋한 숟가락은 색이
바랬지만 이상할 정도로 손잡이가 깨끗했다. 밥이 오르는 단단한 모양의 파인 공간은
다만 반으로 쪼개져있을 뿐이었다.
아마도, 지금도 그렇지만 조선의 여인네들은 살아서
먹지 못한 밥을 죽어서라도 먹느라고 그랬을까. 섬세한 걸이가 비녀같은 숫가락과 네모반듯하게
지어올린 젓가락은 덕지덕지, 파란 밥알이 붙어떨어지질 않았다.
죽은 자의 수저를
씻는, 산 자들은 신기해할 뿐이었다. 남자친구를 엉뚱하게 풍납토성 발굴지에 떨구고 온
선배도 이상하리 만치 깨끗한, 죽은 남자의 수저를 신기해했다. 표면에 드문드문 남아있는
황금색의 줄기가 혈관처럼 흘렀다. 밥풀하나 붙지 않았는데, 썩어서 없어진 이 남자는
한 끼도 먹지 않았던 걸까? 먹지도 않은 혈관이 손잡이에 붙어서 박동하는
것은 대체 무슨 이유일까...
그리고 산 자들이 밥을 먹을 시간이
왔다. 공사장 직원들이 밥을 먹는 컨테이너에 천천히 걸어가 급식판에 스테인-레스 수저를
올리고 밥, 국, 반찬을 담았다. 얼룩이 잘 안생긴다는, 산 자들이 쓰는
수저는 통째로 은색을 발했는데 그 낯빛이 염한 죽은 자들의 피부처럼 차가웠다.
그리고 불에 볶아 기름이 빠져버린 남의 살을 차가운 뼈로 집어올려 입에
넣어보았다. 혈관이 감싸고 있는 목구멍과 위장에 오 밀리미터의 두께로 자른 돼지고기가,
돼지의 살이 흘러들어갔다. 죽은 자들은 산 자들이 씻어준 수저를 다시는 집지
못할 것이 분명했다. 우리가 죽은 살을 먹으니 그들은 살아있는 '살'을 먹고
싶어하겠지....... 분명히 그 수저는 주인이 있지만 다시는 꺼내서 볼 물건은 아니었다.
밥을 먹고 돌아오자 23년을 살아온, 08학번의 여자가 과일간식을 먹으면서 추근덕거렸다.
물론 이건 항상 쓸데없이 오만한 남자의 편견이다. 『오만과 편견』이다. 그녀는... 23살인데도
고등학생 2학년 같았다. 몸집이 커서 얼굴도 어려보였던 것이다. 『배고픔의 자서전』에 나오는
무지막지한 수녀의 부피를 가졌지만 키가 조그마해서 더욱 그랬다. 아마도 그녀는 똑같은
높이에 앉은 남자에게 장난을 걸고 싶어했던 것일까. 적어도 그 사람은 자신이
하는 말을 내가 장난으로 받아주길 바랬겠지. 싫었다. 사는 곳, 옷, 그러다가
바지와 옷자락에 묻은 흙먼지를 말할 때 소름이 끼쳤다.
물론
이해 못하는 것은 아니다. 여자사람에게 괜시리 다가가 부담을 주었던 플러스 구
킬로그람의 남자였으니 그걸 설마 이해못하겠는가마는, 그렇다고 옷에 묻은 흙먼지를 이야기하다니! 만약
여자사람에게 얼굴에 묻은 카스카라 자국이나 약간 삐둘어진 색조화장을 운운-하면 어떤 반응을
보일까. 그것도 지금의 상태가 아닌 아홉 킬로그람이 더 나가는 남자가 그랬더라면?
그래서 더욱 먹기가 싫어졌다. 죽은 자의 살을 집어올리는 파란 밥풀의
수저, 살해된 것을 볶아 빛나는 막대로 갈라먹는 산 사람, 그리고 풍채가
수려한 여자, 남자... 그리고 그는 얼마 전에 살해된 고기를 5만원이나 공짜로
먹을 수 있는 종이쪽지가 눈에 띄어 다른 사람에게 권했었다.
갑자기
몸을 씻고 싶었다. 황금색의 혈관이 피부를 스멀거리며 기어오르고 있었고 노란 태양빛이
사무실의 테라스를 슬금슬금 넘어왔다.
도로 한 가운데에 떨어져있던, 저녁노을에
털이 빛나던 고양이 꼬리가 베란다로 들어오는 환영. 그건 분명 우리집 앞
골목에나 있던 죽은 조각인데....... 얇아서 피가 별로 세어나오지도 않았지만, 그래도 혈관에서
나온 끈적이는 덩어리가 꼬리를 땅에 붙여놓았다. 피부가 자꾸 끈적거렸다.
문이
열리더니 조선생님께서 들어오셔서 고양이 꼬리가 들어오려했던 방 한 가운데에 갑자기 작업취소를
알렸다. 새로 파낸 회곽에서 유골이 나오는 바람에 해야할 일들이 모두 밀려버렸다고
말씀하셨다.
이젠 종이에 그린 토곽의 가로세로높이를 측정해야했다. 사람이 누웠던 무덤을
눈으로 직접보고 종이로 다시보고 숫자로 변환하는 컴퓨터가 되어 앉아 일했다. 이
종이무덤에는 어떤 사람이 묻혔을까. 머리 어깨 무릎 발 무릎 발을 그려보고
싶었다. 『안녕하세요, 기린입니다』. 더 이상의 명령이 없자 기계장치는 다시 씻고 싶은
사람으로 돌아와 바닥에 주저앉았다가 이번에는 물을 긷는 머슴으로 너털너털, 자외선의 전당으로
나아갔다. 해는 뜨겁지 않았는데 유리가루로 된 비가, 눈에 보이지 않게 내리고
있었다. 피부가 차라리 더워서 녹아내렸다면 좋았을텐데... 유리조각이 피부를 때리고 훑고 맛보고
지나갔다.
그리고 다시 포클레인이 뒤엎어서 사라진 길을 돌아 유리가루를 마시며 사무실로 돌아왔다. 이번에는 명기라 하는, 죽은 사람들이 얼굴을 씻을 때 썼다는 도자기들을 물에 담궜다가 칫솔로 문질렀다. 그들이 부러웠다. 적어도 죽어서 씻기라도 했으니, 아! 이 유리가루들은 언제 떨어지려나를 생각하며 흙이 담긴 죽은 사람을 위한 세면도구 속을 깨끗하게 청소했다. 산 자가 씻지못해 죽은 사람이 부러웠다.
결국 이 모든 일을 마치자 할 게 없었고
퇴근하려면 20분이 남아 남자만을 위한 샤워실을 찾아 몸을 씻었다. 황금혈관이 자라다만
팔뚝, 너저분한 추근거림과 눈길 그리고 흙먼지, 죽은 고양이 피에 엉긴 유리가루.......
그리고 죽은 남자의 깨끗한 수저처럼 몸을 수건으로 윤냈다.
사무실 담당
선생님께서 나와 선배를 연신내역에 떨어뜨렸고 예정된 회식의 장소인 인사동으로 가라는 말을
해주었다. 노란 햇볕이 갑자기 90년대로 돌아간 서울 거리를 흐르고 있었고, 남자와
여자는 재빨리 지하로 몸을 피했다.
인사동에 도착했는데, 전통의 거리에는
서양에서 들여온 벽돌기술로 만든 중국식 벽돌이 인도를 이루고 일제, 미제, 프랑스제,
한국제의 디자-인을 씌운 자동 동력 차량들이 그 위를 걸었다. <초속 5센티미터>도
안나오는 속도로. 차보다 빨리 내달리는 두 명은 심심하고 더웠고, 그래서 한
사람이 권한 부채를 구경해 보았는데 아름다웠지만 예쁘지는 않았다. 남자가 쥐어봤자 예쁘지
않았기 때문이다. 중간에 터어키식 아이스-크림을 파는 노점에서 마르다만 고양이 피같은 하얀색의
차가운 음식을 샀다. 선배는 먹으려고 하질 않았는데 너무 비싸다는 이유였다. 그래서
맛만 보더니 끈적인다고 했다. 끈적이는 차가운 하얀 음식, 마르다만 블랑-망제인 걸까.
가장 오래된 차가운 프랑스 과자의 시체조각이었다.
결국 너무 더워 <더
커피빈>이라는 기묘한 복층의 커피숍에 올라갈 수밖에 없었다. 그 커피 콩이라니 대체
무슨 소리인지도 모르는 가게 이름이, 어색해하는 선배때문에 더 이상해보였다. 악마의 음료라고
불렸던 커피에 모카와 우유를 넣고 얼음을 띄운 혼합액체 스몰, 그나마 원형에
가깝다는 아메리카노에 아이스를 섞은 레귤러를 주문하자 파란 종이 한 장을 건낼
수밖에 없었다. 딸랑, 500원이 손에 떨어지고 친절하게도 종이쪽을 한 장씩이나 낸
사람에게 음료가 나왔으니 가져가라고 알려주는 진동기가 나왔다.
잠깐 앉아있으니 대체
뭐가 이렇게 비싸냐고 선배가 짜증을 냈다. 항상 커피를 사면 이런 말이
튀어나왔다. 그래서 이건... 그냥 원래 그런 거라고 했다. 배추잎으로 사는 건데
당연히 별 가치가 없는 건데, 하필이면 그 잎에 1이랑 0이 하나,
하나 둘 셋 넷 이렇게 있어서 괜시리 비싼거라고 말해줬다. 제기랄. 화폐는
짜증이 나서 생각해보니 여기 앉은 두 명은 사학과가 아니던가! 미국의 커피숍들과
그들이 주고 받는 돈을 이야기 해주었다. 아직 그 망할 18세기 유럽사를
안들어서 그런건지 이해를 잘 못하는 것 같았지만 금이랑 은, 반짝반짝이는 단어를
몇 가지 제시해주자 쉽게 알아들었다.
갑자기 전화가 왔다. 전화, 전화를
주시오! 회곽이 열리는 바람에 죽은 사람들이 누운 침대를 그리고 측량하느라 늦은
다른 사람들이 왔다는 신호였다. 그 속에는 23년을 산 사람도 같이 끼어있었는데
다행히 말을 걸어주지 않았다. 아마도 계속해서 딸러 이야기를 해서 듣기가 싫었던
모양이다.
회식을 하러간 곳은 퓨전 한식 집이었다. 보쌈이랑 장어구이랑 무슨
가게이름 셑트를 시켰는데 보쌈고기는 일본인들 음식처럼 달콤한 간장에 끓였고 장어역시 데리야끼
쏘스에 구워 생강초절임이 곁들어져 나오더니 가게이름 세트는 훈제연어 샐러드와 서양식 덴뿌라에
달달한 일본 불고기를 섞어서 내왔다.
뭐지... 그나마 모양이 한식인 건
된장에 무친 나물과 김치였는데 된장무침나물은 정말 종이를 씹는 맛이었고 - 된장향도
나물 향도 안났다 - 김치가 그나마 여기가 전통이 살아있는 인사동인 척
했다.
질펀하게 살찌고 싶을 때 먹는 퓨전 일본식
안주가 한식처럼 식탁다리를 내리누르는 기묘한 중국식 방. 그 안에서 일식 청주와
서양오랑캐가 마시던 맥주를 마시고 떠들다가 나와 헤어졌다.
전통의 거리에 유럽의 농부인 재크의 콩나무처럼 솟은 쌈지길을 오르는데 유럽, 호주,
한국이 뒤섞인 입구가 보여 들어갔더니 귀걸이가 있었다. 귀여웠다. 동이나 은으로 만든
걸이에... 길다란 빛을 뿜는 에펠탑 대신 주렁주렁 이름 모를 작은 것들이
달려있었다. 역시 예쁘지는 않았다.
8시 반, 지하를 향하는 산 자가
목이 말라 어질어질, 집으로 돌아갔다. 돌아오는 길에 어머니께서 레이져 빔-을 얼굴에
쏘이는 바람에, 마시지도 않는데 식염수라는 물이 담긴 병과 살균거즈를 사오라고 전화하셨다.
빛이 유리가루처럼 얼굴의 검은 자국들을 쓸어버린 덕택이었다.
돌아와 앉아 컴퓨터를
켠다. 시간이 흘러 열 한시 사십구분이, 아니 오십분이 되어버렸다. 내일을 위해
다시 잠들 시간이 돌아온 것이다. 내일의 내일도, 그리고 그 내일의 내일에도
몇 백년을 빛쪼가리 없이 밥을 퍼먹은 사람들의 침대를 측정하고 파고 그
둘레에 사고처리하듯 하얀 페인트를 바를 것이다.
정말이지... 뭐라 형언하기 힘든
날이었다. 다 말했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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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인 2009/06/25 11:07 답글수정삭제죽은 자도 살기 위하여 밥을 먹었다는 역사적 사실이 이토록 몽상적으로 녹슨 청동빛으로 다가오다니... 마치 한편의 소설을 읽은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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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의명분을 사용한다는건... 거지같은 자신을 멋진놈으로 위장하는겁니다.
Tracked from 야야곰사냥꾼의 소풍2 / 어설픈 글만 쓰기 2009/06/27 21:21관리자의 승인을 기다리고 있는 트랙백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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